아프고 시린 화엄의 길

                                                  -시인 김성주의 『구멍』 읽기

                                                                                     김관후(시인·소설가)

1

60년대 초반, 시인 김성주를 오현중학교 교정에서 만났다. 당시는 중학교도 입시를 치르는 시절이라, 오현중학교는 제주시내에서 가장 경쟁률이 높았다. 초등학교에서 실력이 높다는 학생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나는 김성주와 함께 나란히 문예특기장학생으로 뽑혔다. 그래서 일찍이 그에게 문학적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후, 그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였다.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방황의 시절을 마감할 무렵 시내에서 우연히 그를 만났다. 그와의 대화가 날이 갈수록 심도를 높여가는 즈음에 나는 그에게 ‘시를 쓰라’는 충동질을 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여기에는 그를 둘러싼 가족사 자체가 나와 마찬가지로 제주4·3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인 김성주는 1996년 가을 「찔레꽃·1」외 4편으로 『자유문학』을 통하여 문단에 얼굴을 내밀었다. 여기에서 그는 아픈 가족사를 내세워, 어느 시인 흉내를 낼 수 없는 공권력으로 찢겨진 제주섬 곳곳에 도사린 암흑의 역사를 걷어내려는 의지를 보이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어머니는/ 질기고 긴/ 한숨으로/ 찔레를 키우셨다// 징용서 풀린 지아비/ 4·3 나던 무자년에 죽고// 아들은 산으로 올라/ 기축년에 죽고// 딸마저 그해 가을/ 눈위 핏자국으로 갔다// 홀몸 가시로 칭칭 묶고/ 속돌 연자방아 피멍으로 돌리시다/ 팍, 터지며/ 막, 피어난 찔레꽃’ -「찔레꽃·1」부분

그렇다. 그의 외할머니는 가슴 속에서 찔레를 키우고 있었다. 외할아버지가 징용에서 풀렸지만 1948년 제주4·3으로 운명하고, 외삼촌도 산으로 올랐지만 1949년에 운명하였다. 아아, 그의 어머니도 운명하였다. 그래서 시인 김성주는 저승 어머니를 부른다. 물론 아버지도 제주4·3의 희생양이 되었다.

‘눈보라 높새 파고 날으는/ 섣달 스무 아흐렛날 삼경/ 꼴밭모퉁이 무덤 열리고/ 도깨비불 하나 온몸 사른다/ 상여꾼들 꽃놀림도 숨죽인 거리제/ 몰아진 눈밭에 눈물· 콧물 범벅을/ 그냥 쓰린 가슴으로 차려받는다’ -「저승 어머니」부분

시인이 데뷔 당시, 심사위원 신세훈(申世薰), 임헌영(任軒永), 김원길(金源吉)은 심사평을 통해 “김성주의 시는 제주의 아픔과 한을 다룬 토속미학이 범상치 않아 개성미가 뚜렷함으로 믿고 당선시킬시킬 수밖에 없었다. 외재율에 의한 시적 호흡이 제주 민요나 한국의 소리가락에 얹혀 알맞고, 그 토속한의 리얼한 주제가 이 형식에 객관적으로 잘 어우러지고 있었다.”라고 추천의사를 밝히고 있다. 그리고 시인은 당선소감을 통해 “얽힌 실타래를 싹둑 잘라버릴 수 없어, 미련스럽게 한 올 한 올 폴어보련다.”라고 화답하였다.

이처럼 시인 김성주의 가슴에 쌓인 얽힌 실타래를 자르는 일이 일생동안 그의 시작업의 동기가 되었다.

2

시인 김성주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문학의 세계에서 역사를 만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영국의 사학자 E H 카(Edward Hallet Carr)는 "역사란 역사학자와 역사적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그리고 카는 "역사학자는 현재의 일부이고 역사적 사실은 과거에 속한다. 따라서 역사는 상호작용이다. 사실을 갖지 못한 역사학자는 뿌리가 없는 존재이고, 역사학자를 만나지 못한 역사적 사실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라고 선언한다.

『구멍』을 읽으며 제일 먼저 나를 옭아맨 질문이 문학과 역사의 관계였다. 시인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아는 데는 역사만한 주제가 없지만, 문학이야말로 우리에게 역사 사료에서 얻기 힘든 부분들을 보여준다. 역사 기록은 사실 중심으로 될 수밖에 없다. 인간의 냄새와 숨결, 섬광과도 같은 정신의 편린들을 오롯이 되살리기란 역부족이다. 그렇지만 시는 시인의 정신의 편린을 보여주면서 독자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카가 주장하는 '역사(歷史)'의 뜻을 살펴볼 때 하나는 '지난날 인간 사회에서 일어난 연속적인 사건 그 자체' 또는 '인간 사회가 변화 발전해 온 과정 그 자체'를 말한다. 이른바 '객관적 실재(實在)로서의 역사'다. 다른 하나는 그러한 사건과 과정을 문자로 재현하거나 정리한 '기록으로서의 역사'다. 그렇다면 제주4·3은 지금도 진행되는 연속적인 사건이다. 그러니까 ‘4·3문학’이야말로 객관적 실재로서의 역사복원에 더욱 힘을 실어줄 수 있다.

‘역적은 숨어 사는 요령도 서툴러/ 을지문덕 꿈을 꾸며 육사를 지망했다/ 깨어보니 가슴팍엔 붉은 수인 번호/ 스스로 툭, 지는 동백이고 싶었다’ -「나는 아직도 역적인가」 부분

‘밝고 보드라운 날에도/ 시퍼런 칼날로 돋아나는 것들이 있다// 하늘만 우러를 뿐/ 땅 속 깊이 발을 뻗을 뿐/ 바람에 뉘일 줄 모르는 우직한/ 등허리를 후려치는 채찍아/ 태사른 오름 두고 어디로 가란 말인가’ - 「사월 억새」 부분

제주4·3이 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역사적 사실, 제주4·3을 어떻게 문학으로 승하할 것인가? 시인 김성주는 가슴팍에 수인 번호를 달고 다니는 역사의 역적이다. 그렇지만 아름답게 피고 지는 동백이고 싶었다. 일생을 시인의 등을 후려치는 채찍이 시를 찾아 헤매게 만든 것과 동일하며 그게 바로 제주4·3이다.

문학은 주관적 정서나 인간과 사물에 대한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다. 4·3문학이야말로 문학인 동시에 역사에 대한 '집단적 기억'의 산물이다. 역사와 문학 사이의 관계를 따져보는 일이야말로, '어제 일어난 사건'이 '오늘 사는 사람들'의 주관적 정서와 생각에 어떤 흔적을 남겼으며, 거꾸로 이런 정서와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작업이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한 해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검토하는 작업이다. 문학은 '내일 일어날 또는 일어나야 할 일'에 대한 사람들의 전망 또는 희망을 변화시킴으로써 '미래의 역사'에도 힘을 행사한다고 볼 수 있다.

3

시인 김성주는 수운교에 귀의하여 신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수운교 정위사이기도 하다. 그의 첫 시집 『비·바람의 길』에서 ‘비’는 동학의 교주이자 천도교의 창건자인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선생을 말하는 것이고, ‘바람’은 그의 제자들을 상징한다. 두 번째 시집 『구멍』의 첫 장을 넘겼을 때 “구멍으로 들어온 바람이 오장육부를 휘젓고 나온다. 따지고 보면 나의 들숨은 누군가의 날숨인 것을.......” 이란 글귀를 넘기면서 감탄을 자아낼 수밖에 없다. 아아, 작은 구멍을 스쳐오는 바람이 나의 오장육부를 희젓다니.......가끔 그의 집을 방문했을 때 제복을 입고 불공에 열중하는 그를 볼 때마다, 그가 상상하는 구멍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종교적 상상력’이라고 칭할 수 있는 정서가 짙게 묻어난다.

‘가우웅/ 상처를 안고 몰려드는 물고기들을 어루만지며/ 부르튼 천수(千手)로 물고기를 집고 넘어/ 철썩 사르르/ 무성(無聲) 무색(無色)이 되어 찾아온 임의 노래/ 짭짤하고 축축한 그, 눈물 속에서/ 범종이 운다// 가우웅’ -「한담리 바닷가에서 범종소리를 듣다」 부분

시인 김성주는 그의 걷는 길 어느 곳에서도 범종 소리를 듣는다. 일상사가 종교 행위이다. 한담리 바닷가를 걷던 시인은 그 곳에서도 범종소리를 들었고, 상처를 안고 달려오는 인간군(人間群)을 향하여 사랑의 노래를 부르라 한다. 그렇지만 그 임의 노래에는 눈물이 어려있고, 눈물 속에는 범종의 울음이 깃들여 있다. 이것이 바로 시인의 추구하는 창작행위이다. 수운교는 수운 최제우의 현신(現身)으로 믿는 종교이다. 최제우는 1864년 처형당했으나 하늘님의 보호로 허신(虛身)만이 참형되었고 실제의 몸은 그후 55년간 전국을 방황했다고 믿는다. 최재우는 억조창생(億兆蒼生) 동귀일체(同歸一體)라는 이상과 후천개벽(後天開闢)의 비전을 동시에 제공하는 영성의 지도자였다. 자기 몸 속 있는 초월자인 ‘한울님’ 곧 ‘천도(天道)’를 설파한 그는, 모든 종교의 맥이 흐르는 사랑과 그리움, 열망 이런 것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래서 시인은 일제강점기에 배일사상을 고취한 수운교에 귀의했고, 수운교 선배들이 순교정신을 이어받아 지금도 제주작가회의에서 참여정신을 발휘하고 있다.

‘대웅전 계단을 내려온 두 여인이 화엄의 벚꽃 길을 걸어간다 마주보는 눈길마다 미소가 번진다 첫사랑에 달뜬 연인 같다// 어린 핏덩이도 울부짖던 어미도 참 많이 부딪히며 흘러온 이십여 년 두 줄기 세월이 나란히 화엄 속을 거닐고 있다’ -「화엄의 그늘」 부분

어린 핏덩이와 어미가 헤어진 지 이십년 만에 만나 다시 헤어져야 할 마당에, 대웅전 계단을 내려오며 두 모녀는 두 손을 꼭 잡는다. 얼마나 아픈 세월이었는가. 그리고 헤어진 세월 속에는 피고름 뭉치가 쌓여있다. 그렇지만 이별의 마당에서 서로 웃으며 꽃잎을 흩뿌려야 한다. 화엄(華嚴)은 만행(萬行)과 만덕(萬德)을 닦아 덕과(德果)를 장엄하게 하는 일이다. 화엄의 너무 아프고 시린 것이 화엄의 길이다. 시인은 오늘도 화엄의 길을 걷고 있다.

4

누가 뭐래도 나는 시인 김성주와 절친한 사이라고 고백하고 싶다. 가식이 없는 그를 만날 때마다 나는 위로를 받는다. 더욱이 그와 나는 이미 문학작품을 통해 역사를 이해하고 시대를 감지해왔다고 고백하고 싶다. 그가 한국시단에 이름을 올렸을 때, 나는 그의 등을 떠밀어 제주작가회의 가입을 권유하였다. 여기에는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아는 데는 제주작가회의가 방점을 찍은 ‘제주4·3’만한 주제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춥다, 가자/ 강순경의 딸, 지금은 내 아내/ 노란 유채꽃 속에서/ 발길을 돌리자고 한다/ 그림을 그리던 아들놈의 캔버스에선/ 파랑과 빨강에 노랑이 끼어들어/ 초록과 주황을 만들고 있다’ - 「흔적」 부분

시인은 지난 역사를 돌아보고 현재를 확인한다. 시대마다 공간마다 인간들이 살아간 길은 역사가 되고 그 길을 따라 숱한 인간들의 삶도 명멸하며 시가 된다. 인간의 냄새와 숨결, 섬광과도 같은 정신의 편린들을 오롯이 되살리는 것이 문학이다. 결국 역사의 진정한 복원은 불가능하다. 이럴 때 시대의 공기를 머금고 태어난 시작품들은 면면히 이어져 지금 우리에게 역사 사료에서 얻기 힘든 부분들을 보여주는 진정한 문학으로 탄생한다. 아프게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을 문학작품 속에서 재탄생시킨 작가들은 한 생애를 살아온 자신들의 감정과 경험, 지식을, 내밀한 속내를 문학 작품 속에 다양한 방식으로 펼쳐 놓는다. 우리는 이미 문학작품을 통해 역사를 이해하고 시대를 감지해왔다. 지난 시대의 역사와 인간을 좀더 촘촘히 이해하려는 의도로 문학작품을 읽었다.

시인 김성주는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