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평화재단 사업 활성화를 위한 토론회.
2008년 11월10일 출범한 제주4.3평화재단(이사장 장정언). 4.3평화공원과 기념관의 운영.관리를 비롯해 ▲추가 진상조사 ▲희생자 추모, 유족 복지사업 ▲문화.학술사업 ▲국내외 평화교류사업 수행을 목적으로 탄생한 재단법인이다.

설립 2년이 흐르는 동안 평화기념관이 문을 열었고, 행방불명 희생자의 개인 표석이 설치됐으며, 유해발굴과 발굴유해 봉안시설이 추진되기에 이르렀다. 또 유족 진료비 지원사업이 추진되는 등 가시적 성과가 적지않았다.

그럼에도 추가 진상조사, 문화.학술사업, 국내외 평화교류사업, 기념관의 체계적인 운영 면에선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애초 설립 목적을 실현하려면 아직도 갈 길이 바쁘다는 얘기다.

멀리 보면 4.3평화재단 탄생의 자양분인 4.3특별법이 제정된지 올해로 만 10년.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해를 맞아 4.3평화재단의 진로와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도민 토론회가 마련됐다.

   
▲ 왼쪽부터 양윤호 제주도 4.3사업소장, 오석훈 제주민예총 지회장, 김창후 4.3연구소장, 양조훈 전 환경부지사, 고호성 제주대 교수, 박원철 제주도의원, 김두연 4.3유족회 직전 회장, 양동윤 4.3도민연대 공동대표.
재단이 20일 오후 제주4.3평화기념관 대강당에서 직접 주최한 토론회의 주제는 '제주4.3평화재단 사업,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제주대학교 고호성 교수가 진행했다. 논의의 집중을 위해 가급적 주제를 좁히려는 의도가 엿보였지만 뚜껑을 열자마자 토론은 폭넓은 분야로 번졌다. 난상토론에서 재단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 지에 대한 복잡한 고민이 읽혀졌다.

그 중에서도 재단 사업의 로드맵은 최대 화두였다.

주제 발표에 나선 양조훈 전 제주도 환경부지사의 메시지가 논쟁으로 이어졌다. 그는 "4.3평화재단의 사업은 영구성을 띠고 있다. 1년이나 5년, 혹은 10년에 끝날 사업이 아니"라며 "먼저 재단의 분야별 사업에 대한 단기, 중기, 장기 마스터플랜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운을 띄웠다. 당장 추진할 사업, 연차적으로 추진할 사업, 장차 추진할 사업 등으로 구분해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박원철 제주도의회 의원(민주당, 한림읍)이 공감을 표시했다.

   
▲ 장정언 이사장ⓒ제주의소리
박 의원은 "올해 재단의 순수 사업비 24억원 중 어느 한 사업에 59%가 집중됐다"면서 "이는 장.단기적 로드맵 없이, 순서도 없이 드러난 문제에만 급급했다는 증거"라고 주위를 환기시켰다.

그는 "재단이 (사업의)방향을 잘 잡고 있는가"라고 되묻고, 추가 진상조사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업을 벌여놓기 보다 본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4.3도민연대 양동윤 공동대표도 재단 예산이 계획한 사업에 채 집행되지 않고 있는 점을 들어 "로드맵을 짜서 철저하게 사업을 수행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제주민예총 오석훈 지회장은 "어찌보면 예산은 지엽적인 문제일 수 있다"며 "구체적인 로드맵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양 전 부지사가 '5대 난제'로 꼽은 ▲4.3추모기념일 제정 ▲보상 및 생계비 지원 ▲평화재단 기금 확보 ▲평화공원 3단계 사업 ▲희생자 등의 추가 신고는 재단의 기본 미션(임무)이라고 했다.

재단의 인력.조직 확충이 시급하다는 주문도 잇따랐다.

제주4.3유족회 김두연 직전회장은 "직원이 4명밖에 안되는 지금의 상황으로는 재단 운영이 정상적일 수 없고, 현안 대처는 꿈도 꾸지 못한다"고 실태를 진단했다.

4.3연구소 김창후 소장은 "재단의 조직을 강화하고 예산 지원을 늘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면서 "재단에 보다 많은 전문가를 참여시키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제주도 4.3사업소 양윤호 소장은 "사업소의 인력을 3분의 1 정도로 줄여 재단에 파견하는 방안이 조직개편 차원에서 검토되고 있다"며 "이럴 경우 재단을 보다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도청의 움직임을 소개했다.

4.3 관련 예산은 가장 '뜨거운 감자'였다.

김두연 전 회장은 "항간에 '4.3유족복지 사업 예산이 너무 많다'는 얘기가 들리는데 해녀 복지 예산과 그 인원을 비교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며 격한 어조로 제주도와 의회를 비판했다.  

양동윤 대표는 "재단이 추가 진상조사나 문화학술사업을 거의 안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며 "재단이 이런 사업을 잘 할 수 있게 예산 지원을 제주도에 요구해야 한다"고 김 전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기금 조성과 적립 방안을 놓고도 공방이 벌어졌다.

기금 목표액은 국비 400억원, 도비 90억원, 민간모금 10억원 등 모두 500억원이지만 현재 적립된 액수는 6억2500만원 뿐이다. 기획재정부는 국가재정운영상 기금을 일시에 출연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에 따라 기금(400억원) 적립 때 발생하는 이자(5%) 수입에 해당하는 연간 20억원만 재단 사업비로 지원하고 있다.

적립된 기금 중에는 재단의 사업 예산으로 잡혔다가 그해 연말까지 집행하지 못한 부분도 상당액 들어있다.    

양 대표는 이 점을 문제삼아 "사업예산은 사업에 쓰여져야지 남은 예산(사업잉여금)으로 기금을 조성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양 전 부지사는 이에대해 "그런 원칙에는 동의하지만, 이대로 놔두면 내년으로 이월되는 예산이 15억원에 이를 판"이라며 "기금으로 돌리자는 것은 미집행예산에 대해 한번쯤은 정리를 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현실론을 폈다.

공방이 계속되자 방청석에 있던 이성찬 재단 상임이사는 "예산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은 것은 그동안 재단 직원이 몇 안됐기 때문"이라며 "앞으로 직원이 확충되면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정리를 시도했다.
 
이밖에 다양한 분야에서 3시간여에 걸친 토론이 이어졌다.

박 의원은 "4.3사업소와 재단의 역할 분담이 미흡해 업무가 중복돼 있다"며 역할 구분을 주문한뒤 4.3평화공원 일대를 트레킹코스, 올레코스, 생태코스 등으로 개발해 '평화의 성지'로 육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두연 전 회장은 유족들도 국비 확보 노력을 펴야 한다고 다짐하면서 (4.3희생자, 유족의)배우자에 대한 지원 조례 제정을 촉구했다.
 
양동윤 대표는 "5대 난제는 정치적인 노력에다 4.3관련 기관.단체들의 운동성이 가미돼야 풀 수 있는 문제"라면서 "정치적인 문제를 재단이 풀 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창후 소장은 "국가추념일도 필요하지만, 5.18기념식 당시 '방아타령' 논란에서 보듯 정부 주관에 따른 폐해도 많다"며 "먼저 제주도 조례 제정을 통해 도내에서 평화.인권의 소중함을 되새기려는 붐을 일으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양 전 부지사는 "국가가 주도하면 행사가 박제화될 우려가 있는 것은 맞지만 제주도 조례 제정에는 함정이 도사려있다"며 "조례가 만들어지면 정부에서 더 이상 나아가려 하지 않을께 뻔하다"고 경계했다.

오석훈 지회장은 "재단은 거시적으로 바라보고, 큰 꿈을 꿔야 한다. 4.3은 우리들에게 아픈 역사지만 후세엔 이걸로 먹고 살지도 모른다"며 12만평의 공원 부지 가운데 남은 5만평에 공연, 문화, 학술, 교육이 가능한 최고의 복합시설을 갖추자고 제안했다.

양윤호 소장은 기금 조성에 시민들이 십시일반 참여한 5.18재단의 예를 들면서 국비 타령만 할게 아니라 자구노력을 편다면 도민들도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