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년 전, 4·3의 소용돌이 속에서 겪은 비극과 고통을 가슴에 묻고 살아왔던 유가족들이 한풀이를 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제주4·3연구소(소장 김창후)는 28일 제주시 열린정보센터 강당에서 열두 번째 본풀이 마당을 개최했다. 본풀이 마당은 4·3 전후 세대에게 실체적 진실을 알리며 해원과 상생을 이끌어 내고 있다.

첫 번째 증언자로 나온 고신종씨(77·제주시 용강동)는 1949년 13살 당시 용강마을 대토벌 사건으로 어머니와 할아버지 등 가족 6명을 잃었다.

이어 교래리로 도피했다가 계엄령이 해제되면서 산 속에서 나와 제주시 산지항 주정공장 수용소에서 생활했다.

고씨는 “군인들이 마을 사람들을 포위해 총을 쏘았는데 하루만에 105명이 죽었다. 산에선 걸리면 무조건 다 죽이니깐 살려고 도망쳤다. 같이 뛰던 어머니가 제대로 뛰지 못하면서 밭 하나를 넘을 때 총에 맞아 돌아가셨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증언에 나선 김이선씨(81·조천읍 조천리)는 16살 나이에 총살 현장에서 부모의 시신을 수습했다. 큰 오빠는 예비검속 당시 붙잡혀 수장을 당하는 비극을 겪었다.

김씨는 “오빠 2명이 3·1가두시위에 나서면서 도피를 했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들을 숨겼다’는 이유로 1949년 조천지서 앞에서 총살당했다”며 “어머니는 ‘너도 언제 오라고 해서 죽일지 모르니 헌옷을 입지 말고 곱고 깨끗한 옷을 입고 다녀라’는 마지막 말이 잊혀지질 않는다”며 눈물을 흘렸다.

김씨의 큰 오빠는 6·25전쟁이 터지자 예비검속을 당해 경찰에 끌려갔다. 마침 마을 여자와 장가든 형사가 있어 오빠의 소식을 전해줬다.

김씨는 “오빠를 비롯해 끌려간 사람들은 제주항에서 배에 태워 3시간 정도 나간 후 돌을 매달아 빠뜨려 죽였다. 그 형사는 유치장에 갈아입을 옷과 사식을 계속 넣는 내가 안쓰럽게 여겨 오빠의 죽음을 털어놨고, 수장할 당시 현장에 갔다 온 얘기도 들려줬다”고 회상했다.

김씨는 “수장된 날짜는 음력 6월 21일이라고 얘기해 줘서 지금도 이 날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밝혔다.

마지막 증언에 나선 변태민씨(73·애월읍 상가리)는 서북청년단에 의해 아버지가 희생당한 아픔을 겪었다. 이어 할아버지 대신 9살에 보초를 서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변씨는 “아버지는 키우던 말을 팔고 받은 돈을 전대에 넣고 허리에 두르고 다녔는데 서북청년단 3명이 아버지를 끌고 가 총으로 쏘았다”며 “돈을 빼앗으려고 죄 없는 아버지를 죽인 것 같다”고 회고했다.

아버지를 잃은 변씨는 나이가 든 할아버지를 대신해 마을 성곽을 지키는 ‘대리 보초’에 나섰다.

변씨는 “9살부터 10살까지 보초를 섰는데 추워서 고생하는 나를 위해 일본 군인들이 내버린 망토를 주워다가 그걸 꼭 입혀서 보초를 보냈던 할아버지의 손길이 지금도 생생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좌동철 기자 roots@je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