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한 지 6년차에 접어든 4.3평화재단이 아직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사 추천·선임을 둘러싸고 이사장-이사들 사이에 불협화음이 일면서 이사회가 온전한 모습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4.3이 권력화 되고, 재단은 ‘창조성’을 상실, 깡통 조직이란 말까지 나온다.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서는 재단이 바로 서야 한다. 65주기 위령제를 앞둬 재단이 풀어야 할 숙제를 점검해 본다. [편집자 주]

   
▲ 제주4.3평화재단이 초심을 잃었다는 지적이 많다.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암투, 창의성을 잃은 전문가들, 기득권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충고에 귀를 닫고 있다. 재단은 ‘4.3의 교훈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홈페이지 맨머리에 올려놓고 있다. ⓒ제주의소리

[4.3재단 어디로 가고 있나] ② ‘창의적 사업’ 실종→존재감 ‘흔들’

제주4.3평화재단에 대한 비판 중 하나가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존재감이 없다는 얘기다.

4.3특별법에 근거해 출범한 제주4.3평화재단의 역할을 그야말로 막중하다. 시행령에 따르면 4.3평화재단은 △4.3사료관 운영 및 평화공원의 운영 관리 △추가 진상조사 △추모사업 △유족복지사업 △문화·학술사업 등을 수행하도록 되어 있다.

재단이 올곧게 서면 4.3문제의 완전한 해결은 희망사항이 아닌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출범 초반 제주도정의 과도한 개입으로 ‘官 주도’ 논란에 휩싸일 때야 “처음이니까”라는 동정론에 기대어 면피할 수도 있었지만, 만 5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지금까지 홀로서기를 못하고 있는 데 대한 자성론이 등장하는 배경이다.

이는 조직을 이끄는 수장의 리더십뿐만 아니라 ‘거중조정’ 역할을 하는 이사회 역시 제 역할을 하기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수혈된 소위 ‘전문가’들도 급속히 관료화되면서 소명의식이 실종됐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새겨 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4.3을 정치영역으로 끌어들였다는 비판은 현 이사장과 Y이사를 겨냥한다. 이들은 지난 6.2지방선거 때 우근민 캠프에서 호흡(?)을 맞췄던 사이로, 외부에서는 이들이 이사장-이사로 선임된 데 대해 논공행상으로 인식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이들은 상임이사 선출 문제로 사이가 틀어졌고, 지금은 언제든 터져버릴 것만 같은 ‘화약고’와 같은 사이가 되어버렸다.

이사 추천·선임을 둘러싸고는 김영훈 이사장이 캠프에서 호흡을 맞췄던 O씨를 이사로 추천했지만, 유족대표성을 문제 삼아 가장 강력하게 태클을 건 건 Y이사다. 한때 한배를 탔던 ‘동지’(同志)들 사이에 벌어진 싸움인 셈이다.

모 이사는 “이사회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열린 적이 없다. 언제나 살얼음 위를 걷는 듯한 분위기”라고 전했다.

돌려 얘기하면 4.3을 놓고 권력다툼을 하고 있다는 비판인 셈이다.

그동안 4.3문제에 깊숙이 관여해온 한 인사는 “4.3을 정치판으로 끌어들인 장본인들이다. 이제는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권력다툼까지 벌이고 있다. 정말 추악하다. 자숙해야 한다”며 이들을 싸잡아 비난했다.

외부에서 수혈된 소위 ‘전문가’들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현재 사무처 직원은 10명. 도에서도 파견된 공무원 3명을 뺀 7명이 민간에서 수혈된 전문가들이다. 4.3연구소 사무처장 출신 2명을 비롯해 나름 4.3판에서 이름 꽤나 알린 이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활약(?)은 기대치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는 평가다.

더구나 단체 활동 때의 선후배 관계가 채용되는 과정에서 직급이 뒤바뀌면서 껄끄러운 사이가 된 경우도 있다. 문제는 이 때문에 4.3해결이라는 앞만 보고 가야할 조직이 ‘보신주의’가 팽배하면서 추동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분위기 탓에 재단에서 추진하는 사업들 역시 ‘창의’는 사라지고, 기존에 단체들이 했던 사업들을 가로채기 하는 경향이 부지기수다.

최근 4.3영화 <지슬>이 흥행 돌풍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매개로 4.3을 전국화, 세계화하기 위한 기획물 하나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게 단적인 예다. 민간단체에서 일할 때의 ‘창의력’을 온데 갖데 없고, 주어진 사업만 별 탈 없이 치러내고 보자는 식의 ‘관료주의’습성에 젖어든 탓이다.

여기에다 ‘예산’을 틀어쥔 재단이 떡 반 나누듯 예산을 배정하면서 권력화 했다는 따가운 질책도 쏟아진다.

4.3단체의 한 관계자는 “재단이 ‘예산’을 매개로 4.3관련 단체들을 마치 상·하 관계로 인식하고 통제하려 한다”며 재단 구성원의 급격한 관료화를 꼬집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 예산 집행을 놓고도 잡음이 많다.

4.3유족회는 지난 5년간 재단에서 사업비를 지원받아 연인원 2500명 정도를 대상으로 진행하던 ‘청소년 4.3기행’을 올해부터 중단했다.

이와 관련, 유족회의 한 관계자는 “재단 사업비가 출범 이후 매년 20억원으로 똑같다. 그런데도 매년 지원하던 사업비를 뚝 끊은 것은 유족회를 무시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관계자는 “이사 선임도 문제다. 유족회를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며 유족회 내부의 험악한(?) 분위기를 전했다.

재단은 이를 예산·인력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이는 재단의 안정적 운영을 위한 기금 조성이 무산된 영향이 크다. 제주도는 4.3특별법의 기금출연 조항을 근거로 정부에 기금 500억원을 단계적으로 출연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정부는 타 지역과의 형평성 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명했다. 대신 500억원의 이자에 해당하는 20억원을 사업비로 지원했다.

재단이 해야 할 사업은 점차 확대되고 있는 반면 예산은 2009년 이후 계속 동결되면서 예산철만 되면 국회를 찾아 한 푼이라도 더 따내기 위한 ‘예산전쟁’을 매해 반복하는 실정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재단의 존재감이 없다’는 비판을 예산·인력 부족 탓으로 돌리기엔 찔리는 구석이 많다. 대표적인 게 안정적 재원마련을 위한 기금 적립이다.

현재 적립된 기금은 제주도가 출연한 15억원과 지난 2009년 새누리당(옛 한나라당)이 출연한 2510만원, 이자수입 등을 합쳐 16억원이 조금 넘는다. 자체적으로 발품을 팔아 끌어 모은 기금은 단 한 푼도 없다.

다시금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장전언 전 이사장은 퇴임한 후에 이런 말을 했다.

“4.3단체들이 지난 기간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너무 많이 고생한 것을 잘 알지만, 이게 기득권이 돼선 안된다”.

65주년 위령제를 앞두고 이사장과 이사들, 직원들 모두 가슴에 손을 얹고 곱씹어야봐야 할 대목이다.<제주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