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한 지 5년이 넘은 제주4.3평화재단이 아직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사 추천·선임을 둘러싸고 이사장과 이사들 사이에 불협화음이 일면서 이사회가 온전한 모습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4.3이 권력화 되고, 재단은 ‘창조성’을 상실, 깡통 조직이란 말까지 나온다.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서는 재단이 바로 서야 한다. 65주기 위령제를 앞둬 재단이 풀어야 할 숙제를 점검해 본다. [편집자 주]

   

[4.3재단 어디로 가고 있나] ① 이사장 ‘불통 리더십’ 도마

제주4.3평화재단의 존재감이 흔들리고 있다. 관(官) 주도 논란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해야 할 때가 지났지만 여전히 걸음마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4.3평화재단이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는 말까지 한다.

제주사회에서 ‘4.3’을 입에 올리는 것은 일종의 금기다.

정부가 공식보고서를 채택해 사건의 진상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렸고, 대통령이 공식 사과까지 했지만,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점에서 좌(左)·우(右) 모두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외부적 요인만 놓고 보면 지난 이명박 정부 때가 최악이었다.

이명박 정부 5년 내내 일부 보수·우익세력들은 4.3사건을 ‘폭동’이라고 하고, 4.3평화공원을 ‘폭도공원’이라고 하며 소송을 제기하는 등 노골적으로 4.3을 흔들었다. 그렇다하더라도 그건 도외 인사들의 ‘준동’ 쯤으로 치부됐다.

그만큼 도민사회에서는 ‘화해와 상생’이라는 4.3정신을 바탕으로 상대에 대한 배려를 제1덕목으로 꼽고, 이념적 접근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4.3문제 해결에 머리를 맞댔다.

그래서 어렵사리 출범한 4.3평화재단에 대한 도민사회의 애정은 더 뜨거웠다.

행정부지사가 초대 이사장을 맡으면서 붙었던 ‘반쪽’ 재단, ‘官주도’ 재단이라는 꼬리표는 제2기 장정언 체제를 지나면서 많이 퇴색됐다.

그랬던 4.3평화재단이 최근 들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일을 잘 해서가 아니라, 내부에서 나오는 불협화음이 커서 그렇다.

가장 대표적인 게 이사 선임 문제다. 지난해 10월 임기가 끝난 2명에 대한 후임 이사 선임을 놓고 이사장과 이사회가 정면충돌했다. 정관에는 임원(이사) 중에 결원이 생길 때는 2개월 이내에 충원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5개월이 넘도록 공석으로 남아 있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김영훈 이사장은 지난해 12월27일 열린 이사회에 이사선임의 안건을 상정한다. 김 이사장은 백조일손유족회장을 지낸 O씨와 4.3쪽에서는 생소한 L씨를 추천했다.

O씨는 예비검속 피해자 손해배상 소송문제로 유족회와 다른 길을 걸으며 유족대표성을 상실한 인사로 알려졌다. 6.2지방선거 때 도지사 선거캠프에서 김 이사장과 손발을 맞춘 경험 때문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았다.

L씨 추천배경을 놓고는 이사들도 도통 감을 잡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항간에는 정보기관 개입설까지 흘러나왔다. 결국 이날 이사 선임의 건은 부결됐다.

더욱이 이날 이사회에는 총 15건의 안건이 상정됐는데, 2013년도 예산안만 처리되고 나머지 14건은 부결 또는 보류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다른 기관·단체와 비교하면 이는 이사장에 대한 ‘불신임 결의’ 정도로 해석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김 이사장은 이사들에 의해 부결된 안건을 한달 뒤 다시 직권으로 상정하려다 화를 더 키웠다. 지난 1월28일 열린 이사회에서 재단 사무처장 인준의 건을 처리한 뒤 직권으로 이사선임의 건을 상정하려다 이사들의 반발에 부딪혀 또 다시 무산됐다.

1월 이사회에 참석했던 한 이사는 “이사들의 반발도 반발이었지만, 법률전문가인 환경경제부지사가 ‘부결된 안건을 이사회에 의견도 묻지 않고 재상정하는 것은 법률적으로 맞지 않다’고 지적했고, 결국 이사장이 안건 재상정을 포기했다”고 전했다.

이는 민·관협력형을 표방한 재단이 도정(官)과의 의사소통에도 문제가 있는 단적인 사례로 꼽힌다.

4.3유족회가 이사회에서 완전히 배제된 데 대한 유족들의 불만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정관은 “선임직 이사는 유족대표 및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자” 중에서 선출하도록 하고 있다.

전임 장정언 이사장 체제에서 유족회 관계자가 3명이나 이사회에 참여했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란 말까지 절로 나온다.

4.3유족회의 한 관계자는 “당연직 이사인 행정안전부(현 안전행정부) 4.3처리지원단장조차 유족회가 이사회에서 배제된 것에 강한 유감을 전한 것으로 안다”면서 “유족회가 이제는 재단 논의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됐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상임이사 직을 없앤(?) 데 대해서는 이사장의 제몫 챙기기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관은 재단의 고유 사업을 전담하기 위해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상임이사를 임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1기, 2기 체제에서는 양조훈 전 4.3처리지원단 수석전문위원과 이성찬 전 4.3유족회장이 상임이사를 맡았다.

하지만 2011년 12월30일 취임한 김 이사장은 지난해 10월 임기가 끝난 상임이사의 후임을 여태 임명하지 않고 있다. 사무처 직원들에게는 자신이 상근하는 상황에서 인건비 부담이 만만찮은 상임이사를 두지 않겠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근이사의 연봉은 경력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통상 5000만원 안팎에서 책정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사장에게는 활동비(직책수당) 명목으로 월 200만원과 운전기사가 딸린 차량이 지원된다. 여기에 이사장 몫으로 명시되진 않지만 재단 업무추진비가 4000만원 정도 된다.

이에 대해 한 이사는 “상임이사는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임명한다. 그렇다면 상임이사를 둘 지, 말지도 이사회에서 논의돼야 한다”며 “선의가 깔려있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이사장이 이사회를 무력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꼬집었다.

기념사업팀장 보직 문제를 놓고는 이사장이 인사권을 사유화한다는 지적도 있다.

직원채용 공고 및 합격자 통보 후 8개월 질질 끌던 직원채용 문제가 이사장 취임 후 일단락되는가싶더니 여태 당사자(일반직 2급)에게 보직을 주지 않고 있는 것. 당사자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일단 채용했으면 그에 합당한 보직을 주고,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함에도, 보직을 부여하지 않고 어정쩡한 상태로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인지, 김 이사장에 대한 평가는 대체적으로 박하다. ‘독불장군’, ‘독단·독선’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곤 한다. 리더십을 문제 삼는 것이다. 제주도정과의 의사소통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심심찮게 나온다.

4.3평화재단은 65주기 4.3위령제를 앞둬 이러한 재단 내부문제가 외부에 알려지는 것 자체에 상당한 부담감을 느낀다.

재단 관계자는 “이사 선임과 관련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긴 했다”면서도 “4.3위령제가 끝나고 나면 이사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사 선임도 원만하게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채택한 4.3진상보고서의 미진한 부분을 보완해 희생자 및 유족의 명예회복과 4.3문제의 해결을 위해 출범한 4.3평화재단. 그 초심이 궤도를 벗어나지 않도록 재단은 끊임없이 혁신하고 도민사회는 이를 감시하며 무한 애정을 보내는 줄탁동시(啐啄同時)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제주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