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진 감독 시네댄스 ‘제주 : 년의 춤’ 촬영에 4.3 유족들도 함께

 

   
▲ 28일 오후 28일 제주돌문화공원. 시네댄스 ‘제주 : 년의 춤’ 촬영 현장. ⓒ제주의소리

그들은 외롭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함께한다는 사실에 4.3 유족들은 눈가가 붉어졌다. 이들을 다독거린 것은 바로 ‘춤’이었다. 

28일 오후 제주돌문화공원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 기념탑 앞에서 시네댄스 ‘제주 : 년의 춤’ 촬영이 진행됐다. 이미 영화의 90%가 완성된 상태에서 ‘평화의 춤’이라는 클라이막스 장면을 위한 작업이다.

사유진 감독은 애당초 이 장면을 일반인들이 모두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장면으로 기획했고, 그의 작품에 지지를 보내는 매니아들, 제주4.3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한 이들 60여명이 서울에서 입도했다.

오후 한 시가 되자 새로운 손님들이 나타났다. 바로 4.3 희생자유족회의 부녀회원 20여명이다. 이 영화가 4.3 여성희생자들을 기리는 주제의식을 담은 만큼 이들을 빼놓을 순 없다.

사 감독이 본인의 소개와 함께 작품의 배경, 사람들과 함께 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제주 4.3 여성희생자를 기리고 평화를 염원하는 작품인 만큼 이왕이면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큰 울림을 만들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는 것.

사 감독은 “내년 4월 3일날 이 영화를 제주에서 개봉하고 시사회를 하고 싶다”는 계획도 전했다. 4.3유족들은 기쁜 마음으로 촬영에 동참하기로 했다. 

미리 진영을 약속하고 간단한 춤 동작 워크숍이 바로 이어졌다. 비교적 짧은 연습시간에 손발을 가볍게 맞췄다. 

‘큐’ 싸인이 떨어지자 안무가 최경실이 행렬을 이끌고 잔디밭 안으로 들어섰다.

연습시간이 길지 않았지만 당초 우려와 달리 100여명의 참가자들은 놀라운 호흡을 보이며 깔끔하게 장면을 완성시켰다. 무거우면서도 몽환적인 흐름과 동시에 흥겨움도 뒤따랐다. 사 감독이 의도한 미장센이 돌문화공원을 휘감았다. 

서울에서 온 어린 소녀와 제주의 할머니들이 한 데 어우러졌다. 분위기를 보니 흡사 축제와도 같았다. 사 감독은 한 번에 오케이 싸인을 내렸다.

육지에서 온 이들이 4.3을 위한 영화를 만든다니 유족회 할머니들은 연달아 고마움을 표시했다. 촬영 도중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던 박수자(62.여. 구좌 선흘)씨는 “기분이 좋기도 하지만 돌아가신 분들과 4.3으로 아버님을 잃고 수십년을 홀로 살아온 아흔이 넘은 시어머니를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이어 “돌아가신 여성분들을 위해 재현한 춤을 영화로 만들다니 고맙다는 말을 100번 해도 모자란다”며 “이런 분위기가 모아져 얼른 4.3추념일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 28일 오후 28일 제주돌문화공원. 시네댄스 ‘제주 : 년의 춤’ 촬영 현장. 안무가 최경실(왼쪽)과 사유진 감독(가운데)이 참여자들에게 영화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 28일 오후 28일 제주돌문화공원. 시네댄스 ‘제주 : 년의 춤’ 촬영 현장. ⓒ제주의소리

영화 제작과정 자체가 평화 기원하는 의식

이번에 제작되는 ‘제주 : 년의 춤’은 사 감독의 햇살댄스프로젝트2014 작품이다.

사 감독은 2012년 광주 5.18을 다룬 ‘햇살댄스프로젝트 Ver. 광주’를 시작으로 작년에는 티베트의 독립을 요구하며 분신한 희생자를 기리는 ‘피스 인 티베트 : 눈물의 춤’을 제작했다.

이번 작품에도 춤과 영상으로 평화를 말하는 그의 색깔이 그대로 드러난다. 말그대로 씨네댄스다. 나레이션이 중심이 아니라 결정적인 순간에 ‘춤’이 나온다. 무용계에서는 이전에 ‘댄스비디오’라는 장르가 존재했지만 단지 영상이 무대에서의 하나의 요소였던 만큼 사 감독의 ‘춤 영화’는 새로운 개념이다.

참여지향적인 씨네댄스는 리얼하기도 하고 날 것 그대로인 특징도 지닌다. 극영화에서는 화면의 모든 요소를 통제하지만 그의 춤 영화는 자연스러운 상황을 유도한다. 지나가는 행인이나 개도 자연스럽게 내버려둔다. 그는 이것이 ‘주체와 객체의 분리’를 나타낸다고 말한다.

관심있는 이들은 참여하고 싶어하고, 자신의 얘기를 드러내고 싶어하는 데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나가는 만큼 객체와 주체가 분리되는 상황이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

 

   
▲ 28일 오후 28일 제주돌문화공원. 시네댄스 ‘제주 : 년의 춤’ 촬영 현장. ⓒ제주의소리
   
▲ 28일 오후 28일 제주돌문화공원. 시네댄스 ‘제주 : 년의 춤’ 촬영 현장. ⓒ제주의소리

이 춤의 배경으로 제주가 선택된 것은 그의 작품세계에서 제주를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앞서 5.18의 광주가 그랬고 승려들이 분신자살하는 티벳이 그랬다.

영화는 이달 초 작업을 시작했다. 90분 분량의 영화는 월령 앞바다, 성산일출목 근처 터진목, 다랑쉬오름 등 4.3의 아픔이 시린 공간에서 촬영을 마쳤다.

물론 영상으로 된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시도이지만 동시에 그 과정 자체가 평화를 기원하는 의식이기도 하다.

“저희 작업은 영화 찍는게 다가 아니에요. 영화가 반이고 의식적인게 반이에요. 평화를 혼자 기원하는 것보다는 100명이 기원하는 게 더 힘을 발휘할테죠. 또 국가권력으로 인해 희생자 얘기인만큼 국가지원을 안 받으려고 했죠. 그러다보니 한계도 있었지만 후원자 분들이 클라우드 펀딩을 해줘 도움이 됐죠.”

실제로 촬영 중 눈물을 쏟기도 했던 어르신들은 춤이 모두 끝난 뒤 후련하다는 듯 환하게 웃기도 했다. 당연히 사 감독과 스텝들은 흐믓했다.

이 영화가 어떤 의미로 기억됐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그는 곰곰히 생각하다 차분한 어투로 말을 건넸다.

“따뜻한 손길이고 따뜻한 햇살이었으면 좋겠어요. 개인적으로 너무 아팠을 때 누군가 와서 가슴과 등을 쓰다듬으면서 씻김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런 씻김처럼요.”

 

   
▲ 28일 오후 28일 제주돌문화공원. 시네댄스 ‘제주 : 년의 춤’ 촬영 현장. ⓒ제주의소리

<제주의소리>

<문준영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