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연구소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작된 4.3운동은 20년이 경과하며 수많은 성과를 냈지만 오늘날 ▲기존의 분단체제로부터 구조적 이익을 향수해온 집단의 이념적 비판 ▲4.3평화재단과 4.3연구소간의 역할 분담 문제 ▲연구소의 진로를 둘러싼 방향 설정 문제 등 3개의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4.3연구소는 앞으로 4.3운동의 경험을 이론화하고 국제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15일 창립 20주년을 맞아 제주4.3연구소가 마련한 학술세미나에서 서울대 정은식 교수는 '4.3운동의 과거, 현재, 미래' 발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정은식 교수는 "4.3운동은 초창기의 어려운 상황을 거쳐 1998년에 이르러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며 "김대중정권의 성립은 5월운동의 성과였을 뿐만 아니라 4.3운동의 전개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고 말했다.

이어 "4.3위원회의 설치가 4.3운동의 1단계 전환이었다면 4.3평화재단의 형성은 2단계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며 "이는 4.3연구소의 존립과 앞으로의 역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4.3평화재단의 역할과 기능은 대부분 기존에 4.3연구소가 해오던 역할이나 기능과 중복된다"며 "4.3연구소가 유지로 방향이 잡혔지만 이에 관한 허심탄회한 논의와 명확한 역할분담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둘은 긴장과 경쟁이 잠재해 있는 불편한 관계에 놓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4.3평화재단의 경우 지역사회에 적합한 민관협조모델을 만들어내야 한다"며 "하지만 민관협조모델이라고 하더라도 민간주도형 협조모델이 아닌 경우에는 실패할 가능성이 많다"고 말했다.

제주전통문화연구소 박경훈 소장은 "억울한 죽음을 이용한 안하무인과 4.3의 교훈과 정신이 무엇인지를 배우지 못하는 후대들의 우왕좌왕하는 풍경들을 보면 우습다 못해 을씨년스럽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박경훈 소장은 또 "4.3을 위해서는 별로 한 일이 없는 제주도정의 행태도 문제이거니와 좌초된 3단계 평화공원사업의 문제, 특히 이명박 정권 들어 벌어진 모종의 사태들로 인한 4.3관련 사태들은 역사의 자리잡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특히 1% 지방에서 일어난 일이 현재진행형의 사적 지속성을 지니고 있을 때 그것의 회귀관성은 얼마나 쉬운 일인지를 목도하는 시기"라고 말했다.

박 소장은 "제대로 된 역사청산 없이 화해와 상생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이번 정권들어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함부로 화해와 상생을 이야기 해서는 안된다"며 "죽인 자는 반성이 없는데 죽은 자들이 나서서 용서하는 이러한 역사청산작업이 도대체 후대에 무슨 교훈을 남길 수 있으며 처벌없는 청산이 역사적 재발방지에 무슨 효과가 있겠냐"고 반문했다.

이어 "한때 가해자 처벌을 보복이라는 시각으로 보았던 시기가 있지만 처벌과 보복은 차원이 다른 문제"아려 "처벌의 도덕적 효과는 사실상의 재방방지를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소장은 "1세대 유족인 노부모는 목 놓아 집회현장에서 외치고 있는데 2,3세대 등 그 자손들은 현장에 없는 것도 문제"며 "부모의 삶을 알고 이해하는 후손이라면 본인이 나서야 한다"고 4.3을 겪지 않은 2,3세대들의 관심을 당부했다.

NGO가 본 4.3운동에 대해 제주대안연구공동체 강호진 연구지원실장 "근본적으로 지난 20여년간의 4.3운동은 지금의 잣대로 NGO운동"이라고 규정한 후 "침묵을 강요당해 왔던 1989년 공안의 칼바람 속에서도 역사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고자 했던 운동 주체들의 노력은 지금 구체적인 성과로 나타났고 있다"고 밝혔다.

강 연구지원실장은 "4.3이라는 담론은 더 이상 탄압의 대상이 아니며 대중화에 많은 성과가 있었다"며 "이제 운동의 시각에서 4.3역시 어떤 세계관에서 접근할 것인가가 중요한데 이를 상징하는 것이 4.3에 대한 명명"이라고 말했다.

강 연구지원실장은 4.3이 항쟁적 입장을 고수해야 한다며 "학생운동조직이 왜소화과정을 거치면서 항쟁은 대중적 용어가 아니라 소위 민중단체의 언어로만 존재하게 됐다"며 "이는 4.3문제에 대한 대중화에 기여했다고 불 수도 있지만 NGO의 시각, 운동의 시각에서는 항쟁이라는 담론을 대중적으로 전파할 수 있는 기회를 어느 정도 차단해 버린 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4.3연구소의 경우 연구중심활동으로 변모하고 있긴 하나 주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업무를 대행하는 일이 많아졌다"며 "국가나 자치단체의 역할을 전문성과 운동성을 갖춘 4.3연구소의 노력을 통해 그 결과물을 공식화한다는 측면의 긍정적 의미도 있지만 용역기관화하고 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강 연구지원실장은 "이제 술자리 항쟁담론이 아니라 4.3운동의 질적 도약을 위해서는 항쟁의 복원과 든든한 연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오늘 그 논의의 시작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에는 오사카산업대 후지나가 다케시 교수, 제주대 염미경 교수, 제주환경운동연합 이영웅 사무국장이 나섰고 종합토론에는 제주MBC 송원일 기자, 성균관대 양정심 연구교수, 전남대 헌혜경 연구원, 제주도의회 강덕환 정책자문위원 등이 참석했다.

한편 제주4.3연구소는 이에 앞서 현기영 소설가, 고희범 전 한겨레신문 사장, 고창훈 제주대 교수가 참석해 4.3연구소의 탄생 배경과 그동안의 활동, 성과 등에 대해 기조 좌담회를 가졌다. <제주의소리>

<양미순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