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칫 그동안의 재단 직원 특별채용 문제에 대해 발언하는 것이 마치 불필요한 평화재단 흔들기나 4·3 관련단체들의 이전투구로 비칠 것을 염려하여 극도로 발언을 아껴왔다. 그러나 지난 8일 파행 7개월여 만에 인사위원회가 열렸지만, 회의 개회 10분 만에 아무 결론을 내지 못한 채 폐회하고, 이 과정에서 두 명의 인사위원이 사퇴하는 파행이 다시 이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 더 이상 재단의 현재 조직구조 속에서는 이 문제가 풀릴 수 없다는 판단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단의 정상화와 산적한 4·3사업의 올바른 추진을 위해 빠른 시일 내에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판단 아래 이 성명을 내어 놓는다.
지난해 6월 18일 제주4·3평화재단의 직원을 뽑기 위한 <제주4・3평화재단 직원 특별채용시행계획 공고>에 따른 응시자들에 대한 서류심사와 면접심사를 통해 합격자가 정해졌지만, 일반직 2급 응시자의 자격기준과 정치적 외압설 등에 휘말리면서 7개월째 문제 해결의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세간에 오르내리게 된 것은 2011년 10월 16일 <4·3유족 한마음대회> 축사 자리에서 장정언 전임 4·3평화재단 이사장이 “재단은 4·3특별법에 따라 정부에 의해 설립됐는데 왜 외부세력이 흔들려고 하느냐.”고 비판하면서 본격적으로 재단 외부로 알려졌다. 그것도 최종 결재권자의 입을 통해서니 그 파장은 일파만파였다. 특히“제주도에서 파견된 일개 사무관이 모든 업무를 좌지우지했다.”는 직접적이고 격앙된 표현은 재단이 도에서 파견된 공무원에 의해 위계질서와 명령계통에 이상이 있음을 알리는 것으로 재단 내부의 갈등이 우려수준을 이미 넘어섰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장 전 이사장의 표현에 의하면 평화재단 사무처장이 재단 인선문제에 깊숙이 개입하여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장 전 이사장은 그 다음날 한겨레와의 전화인터뷰에서 “4·3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이다. 재단은 4·3 영령과 유족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데 취직이나 시켜주는 기관으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고 말해, 응모자 중 주변에서는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현 집권도정인 우 지사의 선거를 도왔고, 인수위 전문위원 활동까지 한 경력의 소유자인 ‘P’씨를 직접 겨냥한 것이었다. 장 전 이사장은 4·3재단 직원은 ‘4·3의 전문성’을 두고 선발해야지, 정치적인 외압에 의해 선발되어서는 안 된다며 퇴임 때까지 사무처에서 올린 ‘합격자 결정공고’의 결재를 거부했으며, 이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표류해왔다.
문제의 본질은 간단하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누군가 의도적으로 자격이 부족한 특정인사를 재단에 취직시키려 했다는 정황이 충분하다는 점이다. 특히 그것도 가장 중요한 채용기준을 고쳐가면서까지 말이다.
4ㆍ3평화재단이 당초 직원특별채용 공고를 내면서 제시한 2급 직원 자격 기준을 보면 ① 공무원 5급 이상 ② 공무원 6급 5년 이상 경력자 ③ 전문대학 이상의 전임강사 이상 또는 박사학위 취득 후 5년 이상 관련 분야 실무경력자 ④ 석사학위 혹은 학예사 자격 취득 후 7년 이상 관련 분야 실무경력자 ⑤ 학사학위 취득 후 공신력 있는 4ㆍ3관련 단체 10년 이상 근무 경력자 ⑥ 기타 경력이 이와 동등하다고 인정되는 자였다.
하지만, 이 기준은 서류전형 위원(사무처장과 인사위원 1인)에 의해 심사과정에서 수정된다. 바로 ⑥ 항인 기타 경력을 ‘관련 직무분야 민간근무 3년 이상 경력자’로 정해 버린 것이다. 이 근거는 제주특별자치도 인사규칙을 준용한 것이라고 한다. 결국 4ㆍ3전문성을 강화하는 규정이었던 10년 이상 근무 경력도 ‘3년 이상 근무경력자’로 대폭 완화되면서 무력화되어 버린 것이다. 그것도 인사위원회 전원위원의 합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형위원들만의 합의로 말이다.
인사문제는 사람의 밥줄이 걸린 문제라 아무리 공평무사하게 한다고 하더라도 정치권과 맥이 닿으면 말이 나게 마련인데, 상당한 무리수가 두어진 셈이다. 이러한 정황은 누가 보아도 특정인에게 자격을 부여하기 위한 의도성의 혐의가 짙다. 또한 완화된 기준에 의한 서류전형 역시 전체 7명의 인사위원 중 도청 파견 공무원인 재단 사무처장과 함께 이사 1명만이 참여해 이루어졌다. 서류전형 심사에서 배제된 인사위원들은 크게 반발하면서 공정성 시비가 일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P’씨는 4ㆍ3단체 근무경력 역시 2년 10개월에 머물러, 임의 기구의 경력을 억지로 끌어다 메꾸면서까지 자격기준을 충족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면접시험에서 ‘P’씨가 최고점을 받게 된 것이다. 특히 응모자 중에는 오래전부터 4ㆍ3단체 활동을 해왔으며, 소지 학위 역시 충분히 자격기준을 충족시키는 후보자들도 있었음에도 이를 제치고 부족한 자격을 겨우 메꾼 응모자가 최고점을 받는 아이러니가 연출되고 말았다.) 결국 일부 인사위원들은 일개 정당의 한시적 특별위원회인 범도민대책위 경력을 자격기준에 포함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이건 마치 이승만 정권 당시 자유당의 ‘사사오입개헌사건’을 보는 느낌이다.
이제는 문제를 해결할 때다. 우근민 지사는 2011년 11월 28일 열린 제88회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정례회 도정질문에서 방문추 의원으로부터 4ㆍ3평화재단의 인사문제에 있어 제주도가 개입했다는 의혹제기에 “개입한 적 없다. 앞으로도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간명하게 답했다. 명쾌하게 의지를 밝힌 것이다. 지사가 영향력을 행하지 않았는데도 주변에서 영향력을 행하는 세력이 있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이야말로 지사의 권력을 이용한 사익을 추구하는 세력이니 말이다. 지사가 원하지도 않는데, 지사를 도왔던 사람을 계속 무리하게 재단에 취직시키려 한다면 일반인들의 눈에도 정서적으로 정치적 입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는 지사 역시 억울한 상황에 처하는 일이기에, 그들은 지사의 힘을 빙자한 지사음해세력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파행으로 흐른 평화재단의 정상적인 업무수행을 위해 새로 취임한 김영훈 이사장의 3기 평화재단호가 순항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발본적인 문제해결이 필요하다.
그것은 지난해 이루어진 모든 공모 관련 결과를 원천적으로 백지화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다.
2012년 2월 21일 제주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 박원철 의원이 제주4·3평화재단 행정사무감사에서 직원 채용 잡음이 불거진 상황을 추궁하자 이성찬 재단 상임이사는 “경력기준을 확실히 했어야 하는데 잘못했다.”고 시인했다. 이는 이번 특별채용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임을 자인한 것이다. 그것은 합격기준에 이르는 경력에 대한 명백한 기준도 제대로 세우지 못한 채 채용심사를 했다는 말이 된다. 즉, 합격기준 자체가 불완전한 공모였다는 것을 인사위원장이 인정했다는 것이다. 또한 인사위원장이 이사장 명의로 재단 사무처장에게 두 번씩이나 공문을 통해, 재단직원 특별임용 후보자 등록문서를 파기할 것을 요구한 것은 그만큼 인사위원회의 심사결과에 무리가 있었음을 자인한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이유를 단다고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이번 채용공모와 심사는 부적절한 것일 수밖에 없다.
또한 제주지역에서 4ㆍ3의 어른으로 인정받아 초대 민간이사장으로 재임했던 장 전 이사장이 퇴임 시까지 결재를 거부하면서 끝까지 문제 제기한 사안으로 이는 그저 어물쩍 넘어가서는 안 될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한번 재단에 채용되면 짧게는 10년, 길게는 20여 년 재단의 일꾼으로서 활동해야 하는데, 공정한 심사와 자격으로 근무하지 못한다면, 그렇게 채용된 직원의 신상과 신뢰에도 두고두고 낙인이 찍힐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3만여 희생자의 이름으로 운영될 4ㆍ3평화재단의 신성성 역시 훼손될 수밖에 없다. 또한 앞으로 어떤 젊은이들과 전문가들이 4ㆍ3재단에 공정한 경쟁을 통해 취직하려 할 것인가? 이 모든 일들을 생각하면 이번 특별채용공모는 처음부터 백지화시키고 가까운 시일 내에 인사위원회를 새로이 꾸리고 인사규정 등을 이사회에서 새로이 정하고 그 규정에 따라 공정한 공모가 이루어지도록 처음부터 단추를 바로 끼우는 일이 향후 재단의 미래를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이 있듯이, 작년에 이루어진 재단임용 관련 모든 조처를 백지화하고 전면적으로 공정하고 객관적인(또한 정치적 입김이 작용한다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도청 파견 공무원은 제외한) 인사위원회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인사위원들은 4ㆍ3과 현대사 관련 학계의 전국적인 명망을 지닌 인사들로 구성하고, 새로 구성된 인사위원회를 통해 새로운 채용공모와 공모심사를 통해 선발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이 모든 문제에 대해 책임질 사람은 책임을 져야 한다. 왜냐하면 지난해 7월부터 10개월여 이 문제가 터졌는데도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또 다른 문제의 중심에 선 재단의 사무처장은 그동안의 행정처리 문제 등 사무직 공무원으로서의 능력과 진의를 의심받는 일들을 자초함으로써 재단의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 온 장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아무리 파견직무이지만, 상급자의 두 번에 걸친 행정지시에도 명령이행을 하지 않은 재단의 하극상까지 연출한 것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대목이다. 왜냐하면 재단도 재단 나름의 공적 질서체계 속에 운영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무처장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재단업무에서 손을 떼는 것이 맞다.
김영훈 평화재단 이사장은 전임 이사장 시절 벌어진 이 문제를 조속히 수습해야 할 책임이 있다. 많은 이들이 신임 이사장의 올바른 문제 해결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사장이 이러한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본인에게 주어진 권리와 책임을 충실히 행사할 것을 엄중히 주문하는 바이다.
우리의 요구사항
1. 2011년도 직원 특별채용 결과를 전면적으로 백지화하고 재공모하라
2. 전국적인 관련 학계의 전문가들로 새로이 인사위원회를 구성하라
3. 신규 인사위원회에서 모든 공모절차와 기준을 정하고, 그에 따라 새로운 채용공모를 실시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