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8일 오후, 서울시청 앞에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라는 자들이 공개적으로 나타났다. 수도 몇 되지 않고, 자기들의 행위가 무얼 의미하는지, 자기들이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는지조차 몰라 보이지만, 정부를 대신한다는 자부심에 찬 당당한 모습이었다. 이는 단순히 사회성 결여와 미성숙의 발로로만 볼 수 없다.
“서북청년단!” 말만 들어도 제주도민들에게는 치가 떨리는 이름이다. 4·3사건 당시의 민간인 학살 만행으로 인간이기를 거부했던 극우백색테러 조직이기 때문이다. 당시 울던 아이들도 호랑이보다 “서청 온다.”는 말에 울음을 그쳤다. 4·3생존자들에게는 여태까지도 “사람이 아니여!”, “생각만 해도 끔찍헌 서청껏들”로 각인되어 있다.
서청은 “우리는 이북에서 공산당에게 쫓겨 왔다. 빨갱이들은 모두 씨를 말려야 한다.”라면서 미군정과 이승만의 하수인으로서 경찰과 군인으로 옷을 갈아입고 제주도에 들어왔다. 북한에서 경제적·정치적 기득권을 누리다 소련군정에 의해 쫓겨나 갈 곳 없던 이들을 당시 집권세력은 정치적 도구로 이용했다. 그들을 반공을 명분으로 한 ‘빨갱이 사냥’, 즉 제주4·3토벌의 선봉으로 내세운 것이다. 제주도의 민간인 학살을 더욱 확대·악화시킨 것은 이들 때문이기도 하다. 나중에는 미군정에게도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오죽하면 이들 때문에 4·3이 발발했다는 당시의 여론이 있었을까. 학계의 보고에 의하면, 그들은 해방공간과 한국전쟁을 통해 20~40만 명 이상의 민간인을 좌파, 빨갱이로 몰아 학살했다고 한다. 임시정부의 수반으로 풍찬노숙하다 돌아온 우파민족주의의 거두인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 역시 서북청년단이었다.
서북청년단, 그들은 한국현대사의 흑역사다. 그들이 휩쓸고 다닌 곳에는 인권이고 인륜이고 없었다. 그들의 만행은 독일 나치친위대의 만행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반공은 명분이었고, 그들은 북에서 버림받고 쫓겨 온 개인사의 복수혈전을 도망갈 데 없는 이 작은 섬의 민간인들을 상대로 벌인 것이다. 마치 울타리에 가둔 사냥감을 처리하듯이 말이다. 그들은 금품갈취, 불법고문, 살인, 부녀자 능욕, 사기 공갈, 상해, 사문서 위조 등 이 글에 차마 올리기 힘든 야만적인 행위들을 4·3의 전 기간을 통해 무자비하게 서슴없이 자행했다. 좌우를 가리지 않고 벌인 일들이다. 그런 그들을 재건하겠다니?
국가라면 최소한 유지시켜야 할 도덕적 가치와 넘지 말아야 할 선들이 많이 무너지고 있다. 하지만 서청의 재건이라니. 이들이 백주의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버젓이 집단행동을 벌인다는 것은 현 정권이 그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비호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일이다.
주지하다시피 독일은 독재자 히틀러와 나치의 만행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해 형법으로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역사의 퇴행을 막기 위한 것이다. 나치시대의 범죄행위를 공공연하게 승인·부인·고무한 사람에게는 5년 이하의 형에 처한다. 특히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卍)를 내보이기만 해도 최고 1년형의 형량으로 다스리고 있다고 한다.
2012년 12월, 메르켈 총리는 네오나치들에 의해 살해된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식에서 “살인자들(네오나치)은 동시에 우리의 조국을 공격한 것이며 독일의 불명예”라고 했다. 또한 “편협한 태도나 인종주의가 처음부터 폭력의 형태를 취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 행동으로 옮겨질 수 있음”을 경고하며, 국민들에게 극우주의에 대한 경각심을 가질 것을 촉구했다. 네오나치에 대한 경각심을 촉구하는 경고이지만, 이는 서북청년단 재건위의 출현에 대한 경고로도 읽힌다.
2차 대전의 패전과 나치의 유대인 학살 등 부끄러운 과거 속에서 유럽의 리더로 부상한 독일의 이런 조처들은 우리가 경청할 많은 부분을 가지고 있다. 즉, 그것은 서북청년단 재건 같은 사안은 반사회사범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를 범죄단체 조직결성에 해당하는 사안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인사들의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만약 어물쩍 방치하면 메르켈의 지적처럼 그들이 “우리의 조국을 공격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말이 행동으로 옮겨질” 날을 예견하고 차단에 나서야 한다. 어쩌면 최근 일베와 서북청년단 재건위 등의 망동은 이들과 이들을 비호하는 세력들의 민주국가 대한민국에 대한 공격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에서 이들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우리 사회는 민주국가의 기반이 뿌리째 흔들리는 백색테러의 시대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정부는 이런 망령됨이 공공연히 행보하지 않도록 즉각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며, 형사범죄의 사안으로 무겁게 다루어야 할 것이다. 정치권 또한 이런 역사의 퇴행을 막을 수 있는 법률 제정에 적극 나서야 한다. 독일의 경우처럼, 반민주적인 행위와 반역사적인 범죄에 대한 특별법을 제정해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67년 전 제주를 휩쓸었던 서북청년단의 공포를 다시금 떠올리게 되는 이 상황을 보면서 우리는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다 이 나라가 이 지경까지 왔는가!”라고. 우리는 역사의 퇴행이 반복되는 이 현실을 목도하면서 “청산되지 않은 역사는 반복된다.”라는 경구를 떠올린다. 진정한 역사청산과 반역사의 망동에 철퇴를 들어야 할 때이다. 하루 빨리 정부와 정계가 이런 망동의 방지를 위해 노력할 것을 거듭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