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행정차치부 정재근 차관이 제주를 방문, 이달 중으로 4·3희생자 재심의에 착수하겠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 우리 4‧3단체의 공동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
현재 극우단체에서 제기하고 있는 일부 희생자에 대한 위패 철거 등의 문제 제기는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며, 이미 수년에 거쳐 수차례 헌법소원과 행정소송 등을 거쳤지만 희생자 결정에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내린 사안이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은 법률적 검토부터 우선돼야 하며, 일개 차관이 운운할 수 없는 사안이 아니다.
왜냐하면, 희생자 결정은 4‧3특별법 절차에 의해서 희생자 심사기준이 마련됐고, 그 기준에 의해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위원회에서 의결된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서, 4‧3특별법에 ‘재심의’(제12조) 규정이 있지만, 그 신청 주체는 희생자 및 유족으로 제한하고 있고 제3자가 신청할 수도 없으며, 이미 시효도 지난 사안이다.
따라서, 백보 양보해서 일부 희생자에 대한 재심의 문제를 논하더라도 4‧3위원회 차원에서 논의해야지 일개 관료가 나서서 말할 사안이 아니다. 하물며 행정자치부 장관이라 할지라도 중앙위원 20명 가운데 한명일 뿐인데, 그 수하에 있는 차관이 재심의 운운 발언하는 것 자체가 중앙위원들을 무시하는 월권적인 행위로 판단한다.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희생자 결정 번복과 4‧3위원회 폐지까지 적극 검토했지만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못했다. 이런 사안이 법률적 절차에 의해 진행된 사실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사 해결에 부정적이던 이명박 정부도 국회의 질의에 “정부와 대통령실은 제주4·3특별법 제2조와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에서 규정한 제주4·3의 성격 규정을 존중하여 4·3사건의 진실을 역사의 교훈으로 삼을 것이다”라고 답변하지 않았던가.
이에 크게 실망한 극우세력들이 2009년 2건의 헌법소원, 2건의 국가소송, 2건의 행정소송 등 총 6건의 소송을 제기했다가 모두 패소했던 것이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도 희생자 심사의 정당성을 인정한 것이다.
4·3특별법의 제정 목적은 4·3에 대한 진상규명과 함께 이념의 굴레 때문에 억울하게 피해를 당해 온 4·3희생자와 유족의 명예회복을 통해 인권신장과 국민화합을 이루고자 함이다. 그 목적에 따라 진상조사보고서 확정, 대통령 사과, 희생자 결정, 국가기념일 지정 등이 이뤄졌다.
우리 4‧3단체는 4‧3으로 인한 피해와 상처를 이겨내기 위해 화해와 상생의 대로에 섰고, 가혹한 학살행위를 한 가해자들도 처벌을 요구하지 않았다. 최근에는 4·3유족회와 경찰 출신 모임인 경우회와 화해의 손을 맞잡아 미래로 나아가고 있다. 따라서 제주4‧3은 이제 이념 갈등 극복의 모범이요, 더 나아가 전 세계적으로 과거사 해결의 모범적 사례로 평가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화해와 상생에 찬물을 끼얹는 4·3희생자 재심의 착수 운운한 차관의 발언은 4·3희생자와 유족, 그리고 제주도민을 우롱하는 반역사적 발언이자 정부의 불신을 키우는 몰상식한 행태임을 밝혀둔다. 이에 대해 국회 차원에서 그 진상을 밝혀줄 것을 촉구한다.
아울러, 낡은 이념의 틀에 갇혀서 지속적으로 소위 희생자 위패 철거, 4·3희생자 재심사 등 올곧은 4·3의 진실규명과 명예회복 조치를 왜곡·폄훼하는 일부 보수세력은 더 이상 역사적 죄인이 되지 말고 자중하기를 강력히 경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