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제주4.3평화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 제주4.3 증언 본풀이마당. ⓒ헤드라인제주
제주4.3 당시 가족들을 잃은 혈육들이 70년의 한(恨)을 토해내며 통곡의 눈물을 흘렸다.
제주4·3연구소(이사장 이규배, 소장 허영선)는 27일 오후 2시 제주4·3평화기념관 대강당에서 4·3 72주년과 한국전쟁 70주년 기념 '4·3, 이산과 재회'를 주제로 열아홉 번째 증언본풀이마당을 열였다. 이번 본풀이마당에는 예비검속 광풍 속에 희생된 이들의 유족들이 나서 사연을 털어놓았다. 4·3은 많은 이산을 낳았다. 어린 나이에 부모·형제를 잃거나 행방불명이 된 채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 가운데는 가까스로 4·3발굴유해 유전자 감식을 통해 70년 만에 혈육을 찾은 이들도 있다.
고영자 할머니(78)가 할머니가 그 중 한명이다. 고 할머니는 한 평생 가슴 속에 담고 살았던 이야기를 처음으로 토해 냈다.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2리에 살았던 고 할머니는 당시 7~8살 남짓이었고, 4살 많은 언니를 둔 막내였다. 4.3의 광폭한 회오리는 이들 가정을 비켜가지 않았다.
마을에 소개령이 떨어지자, 영락리와 할머니 집으로 피신했다. 그러나 상황이 잠시 잠잠해진 틈을 타 고향에 잠시 들렸던 아버지는 경찰에 붙잡혔다.
마을 사람들이 전해준 얘기로는, 아버지는 모슬포 지서에 수용됐다가 여러 사람들과 트럭에 실려 제주시로 떠났다고 했다.
가족들은 백방으로 아버지를 찾았으나, 어느 곳에서 죽었는지도 모른 채, 행방불명 상태가 70년 넘게 이어졌다.
고 할머니는 "70년 살아도 꿈을 한번도 못 꿨는데 굿하고 질치겠다고 한 날 선명하게 나타났다"고 했다.
유일한 혈육인 언니마저 세상을 떠났다. 제주공항(정뜨르비행장)에서의 유해발굴사업이 이뤄지고 있으나 유족들이 행방불명 가족을 찾기 위해 채혈하는 것도 잘 몰랐다고 했다.
그러던 중 2019년 친척 중 한분이 DNA 검사를 해보하는 권유를 해, 2019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채혈을 했다.
그랬더니 정말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정뜨르비행장 발굴 유해 가운데, 자신의 DNA와 일치한 아버지의 유해를 찾은 것이다. 70여년 만이었다.
어릴적 자신을 알뜰히 살펴주던 아버지를, 유전자 감식을 통해 재회한 고 할머니의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27일 열린 제주4.3 증언 본풀이마당에 참석해 증언에 나선 고영자 할머니(78). ⓒ헤드라인제주
27일 열린 제주4.3 증언 본풀이마당에서 정세민씨(76)가 증언을 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이날 증언본풀이마당에는 4·3 때 부모와 조부모를 모두 잃고 다섯살에 홀로 남겨졌던 정세민씨(76)도 나왔다.
위미지서 뒤밭에서 할머니가 총살당할 때 같이 있던 할아버지는 용케 살아남았으나 1950년 예비검속으로 다시 붙잡혀갔다고 했다. 아버지는 숙부와 함께 군법회의에서 무기징역을 받고 마포형무소에서 수감생활을 했다. 그러나 전쟁이 발발하자 아버지는 행방불명이 됐다.
오랜 세월이 흘러서야 아버지의 사망신고를 했다고 한다. 2019년 정뜨르비행장 발굴에서는 예비검속으로 행방불명됐던 할아버지의 유해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직도 행방불명 중이다.
모진 고초 끝에 고향에 돌아온 숙부(정기성)는 4.3생존 수형인에 대한 첫 재심청구에서 지난해 1월 무죄취지의 공소기각 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올해 4월 세상을 떠났다. 제주4‧3연구소는 지난 2002년부터 해마다 4‧3증언본풀이마당을 열어왔다. 증언본풀이마당은 4‧3체험자들이 겪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마당으로, 마음속에 쌓여온 기억을 풀어냄으로써 자기를 치유하는 ‘트라우마의 치유마당’이며, 4‧3의 진실을 후세대들에게 알리는 과정이기도 하다. <헤드라인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