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연구를 이어갈 차세대 연구자가 배출되지 않으면 4.3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조언이다.
제주4.3연구소는 11일 4.3평화기념관 대강당에서 4.3 72주년 기념 학술대회 ‘제주4.3, 조사 연구의 현 단계’를 개최했다.
이날 학술대회는 주진오 교수(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의 기조 강연, 허호준 한겨레 선임기자와 이동현 제주4.3연구소 연구원의 주제 발표, 양정심 제주4.3평화재단 조사연구실장과 양정필 제주대 사학과 교수의 토론으로 진행했다.
기조 강연자로 나선 주 교수는 먼저 제주 그리고 4.3과의 특별한 인연을 먼저 밝혔다.
그는 “2016년 9월부터 1년을 제주에서 연구년을 보냈다. 제주에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이 4.3평화공원 참배였다. 역사학자로서 4.3에 대해 관심 가지고 배우려고 애썼는데, 2017년 3월부터 4.3 70주년 기념사업 범국민위원회의 상임공동대표를 제안 받았다. 2017년 상반기에는 제주도교육청 요청으로 교장 연수에서 4.3 강연을 했다. 4.3평화재단이 주최하는 외국인 학생 대상 영어 강의까지 맡았다”고 지난 과정을 설명했다.
연구년을 끝내고 학교로 복귀하자마자 2017년 11월부터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을 맡았는데, 다음해에는 특별전 ‘제주4.3, 이젠 우리의 역사’를 열었다. 그 이후 희생자유족회에서 감사패 전달과 함께 주 교수를 제주명예도민으로 추천했다.
주 교수는 “박물관장에 부임한 후, 첫 공식행사가 4.3평화포럼 축사였는데, 3년 임기를 마치는 마지막 공식행사도 지난 10월 31일 4.3평화포럼에서 종합토론 좌장”이라며 “어쩌다 이렇게 4.3과 깊은 인연을 맺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운명이라고 받아들인다”고 운을 뗐다.
주 교수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근대개혁운동을 주로 연구한 역사학자’ 입장에서 4.3연구에서 참고할 방향을 네 가지 제시했다. ▲역사에 대한 장기 지속적 관점 ▲제주 사회에 대한 심층적 연구 ▲가해자에 대한 연구 심화 ▲여성사적 관점의 확장이다.
장기 지속적 관점은 4.3을 특수화하고 지역화하는 것에서 벗어나 한국 현대사, 나아가 세계 현대사의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자세다.
주 교수는 “제주 청년들은 4.3단계에서는 피해자로서, 목숨을 잃지 않기 위해 한국전쟁 당시 해병대에 자원 입대했다. 이들이 바로 ‘귀신 잡는 해병’으로서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다. 대한민국에서 전쟁 영웅이 됐다”면서 “그런데 그들에 의해 전쟁 수행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던 사람들에게 그들은 어떤 존재로 기억될 것인지에 대해서 관심이 필요하다. 제주 출신 해병들에게 4.3은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제주4.3연구소는 11일 학술대회 '제주4.3, 조사 연구의 현 단계'를 진행했다. ⓒ제주의소리
4.3 당시 제주 사회라는 특수성에 대해서도 질문했다. “한말 일제 시기 제주도는 식민지 조선에서 가장 일본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지역이었다고 할 수 있다”며 “초대 도지사가 민주주의민족전선 행사에서 축사를 하고 공무원들까지 1947년 총파업에 가담한다는 것은 다른 지역에서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런 원동력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라고 강조했다.
특히 “현재 국가보훈처에 등록돼 있는 독립유공자 목록에서 제주 출신 서훈자 174명 중 문덕홍 단 한 사람만이 광복군에 참여했다”면서 “식민지 기간 중 자체적으로 무장대를 형성해 봉기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왜 미군정 하에서는 한반도 전체적으로 유례가 없는 무장봉기를 일으켰고 몇 년 간 지속될 수 있었는가? 지역사적 측면에서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피력했다.
뿐만 아니라 가해자 편에 서 있던 군경과 서청 관계자 연구, 개신교회를 비롯한 당시 종교계의 동향에 대한 조사도 덧붙였다.
여성사적 관점은 “구체적으로 당시 여성들이 4.3에서 수행했던 역할, 생명의 위협은 물론 성적 피해의 위협을 겪어야 했고 견뎌내야 했던 그들의 삶과 존재에 대해 더 많은 관심과 이해가 필요하다. 아울러 그들이 남자들의 부재상황에서 어떻게 생존해 나갔는지에 대해서도 연구가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주 교수는 4.3연구소에 그치지 않은 4.3평화재단, 제주도까지 포함한 역할을 조언했다.
▲평화재단은 특별법 테두리 안에서 활동, 연구소는 항쟁적 연구·조사 중점 ▲구술 채록, 디지털 아카이빙화 해서 공유 ▲오키나와, 대만, 광주 등 국내외 피해자 연구단체와 네트워크 지속 강화 ▲연구 인력 육성 ▲이사, 운영위원 등 연구소 체제 개방 등을 꼽았다.
11일 열린 제주4.3연구소 학술대회 모습, ⓒ제주의소리
특히 연구 인력 육성에 대해서는 “4.3에 대한 차세대 연구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4.3 미래는 힘들어진다”고 신신당부했다.
더불어 “4.3을 전공하겠다고 하는 대학원생들에게 체계적인 장학금과 역량 강화를 위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언급한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도 젊은 연구자들이 나타나야 실현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제주도나 재단으로부터 연구 용역을 받아 운영하는 방식도 연구소가 탈피해야 한다고 봤다. 한국연구재단이 최근 인문사회연구소 지원사업을 민간 연구소까지 확장한 사례를 참고하라고 제안했다.
주 교수는 “그 동안 연구소를 비롯한 제주인들이 해온 시련과 분투를 바탕으로, 4.3에 대한 대항 기적은 이제 공공기억이 됐다”면서 “국가적 인정을 통해 공식적 역사가 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동시에 저항운동으로서의 성격은 악화되고 국가 지배 구조에 포섭되고 말았던 경우를 다른 지역의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념사업이 제도화되고 시민단체 보다는 국가와 지자체의 주도가 강해지면서, 4.3이 기념공동체로 변질될 우려가 있는 것이다. 4.3이 그렇게 흘러가지 못하도록 막아내는 기억공동체의 중심 역할을 앞으로 수행해 나가야 할 사명이 연구소에 있다”고 응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