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생 할머니(79. 제주시 삼양)가 한국 근현대사의 최대 비극인 제주4.3 소용돌이에 있었던 때는 열다섯 때쯤으로 기억했다.
15살의 어린소녀 시절을 회고하는 한 할머니는 66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 일을 잊지 않고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제주4.3희생자추념일 국가기념일 지정을 기념해 27일 오후 2시 제주시 열린정보센터 6층에서 열린 사단법인 제주4.3연구소 주최 열세번째 4.3증언본풀이 마당 '그때 말 다 허지 못헤수다'(그때는 말을 다 하지 못했다는 제주어)에서 4.3후유장애인인 한 할머니가 증언대에 앉았다.
한병생 할머니(79. 제주시 삼양). <헤드라인제주> |
제13회 4.3 증언 본풀이 마당이 27일 오후 2시 제주시 열린정보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
어린 소녀시절 이 할머니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할머니가 4.3을 맞은 것은 봉개 동카름에 있는 학교에 다닐 무렵이라고 했다.
불을 태워 없앤다는 '소개령'이 내려질 즈음, 2연대 군인들이 총을 쏘아대면서 할머니는 '왼당오름' 숲에 숨어 있다가 군인에게 잡혔다. 이것이 시련의 시작이었다.
다행히 큰 탈 없이 풀려날 수 있었지만, 아버지가 잡혀가버리면서 오갈데 없는 열다섯살 소녀는 결혼한 오빠의 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오빠는 없었다. 일본으로 피신한 상태였는데, 당시에는 산으로 오른 것으로 추정돼 이 소녀는 경찰에 붙잡혀갔다. '산에 올라갔다'는 것은 무장대에 합류했다는 의미로 통용될 때였다.
경찰서에서 '백 경사'라는 경찰은 소녀의 무릎을 꿇게 하고 각목을 사이에 끼워 오빠가 어디에 있는지 말하라며 마구 때리고 고문을 가하기 시작했다.
"백 경사가 제 뺨을 무지막지하게 때리더라구요. 오빠 어디로 갔는지 바른대로 말하라며 매타작을 했지요. 고생이 말도 못해요. 백 경사가 저를 얼마나 때렸는지, 턱관절이 돌아가고 이빨이 어긋나면서 나중에는 다 빠져버린 거에요."
끔찍했던 모진 구타는 48일만에 올케언니가 일본에서 온 오빠 편지를 갖고 오면서 끝나게 됐다. 산에 올라간 것이 아니라 일본으로 피신해 있는 것으로 확인돼 석방된 것이다.
"그 경찰들 이름 잊어버리지 않아요. 정주임, 백경사에요. 백경사는 악질 경찰이었어요. 잊지 못해요. 나 대신 누군가가 백 경사를 죽여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어요. 한(恨)으로 남아 있어요. 백 경사는 사람도 많이 죽였어요. 저도 죽을 뻔 했으니까요."
"나랑 같이 경찰서에 수감된 여자가 데이트 안해줬다고 잡아다가 보리밭에 죽여버렸어요. 그는 권총을 차고 다니면서 총을 쏴서 죽였어요. 나도 죽을 뻔했는데 계엄령이 해제되면서 다행히 살아남았지요."
이후 할머니는 마을 동장댁에 숨어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무장대가 동장댁을 습격하면서 동장 아버지를 죽었는데, 그때 숨어있던 소녀도 칼을 맞고 다리를 크게 다쳤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한 할머니는 4.3 소용돌이가 끝난 후, 틀니를 했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31살.
할머니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66년이란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경찰서에서 당한 모진 고문, 그리고 자신에게 고문을 가한 경찰관들의 이름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4.3에 대해 제대로 알게하고, 후유장애인에 대해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한을 풀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증언본풀이에서는 한 할머니와 함께 양정순 할머니(86. 제주시), 김행양 할아버지(78. 제주시 구좌읍)가 4.3 당시 겪었던 가슴 아픈 기억을 털어놓았다. <헤드라인제주>
양정순 할머니(86. 제주시).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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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철수.오미란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